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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의 나라_콜롬비아 (1)

빅피그 2022. 3. 7. 10:24

원두의 나라_콜롬비아

이번 포스팅부터 원두 재배로 유명한 나라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그 첫 번째 포스팅으로 콜롬비아를 살펴보려 한다.

 

1. 콜롬비아 공화국

콜롬비아 공화국(콜롬비아共和國, 스페인어: República de Colombia 레푸블리카 데 콜롬비아), 줄여서 콜롬비아(스페인어: Colombia 콜롬비아[*], 문화어: 꼴롬비아)콜롬비아)는 남아메리카에 있는 공화국이며 수도는 보고타이다. 카리브해는 북쪽, 베네수엘라는 동쪽, 브라질은 남동쪽, 에콰도르와 페루는 남쪽, 태평양은 서쪽, 파나마는 북서쪽에 접해 있다.

 

콜롬비아의 풍부한 문화유산은18세기와 19세기 동안 다양한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 유럽 정착지, 아프리카 노예 및 유럽과 중동 이민의 영향을 반영한다. 스페인어는 70개 이상의 언어 외에 국가의 공식 언어이다. 콜롬비아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네 번째로 큰 경제이며 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경제이다.

 

2. 콜롬비아의 이름

콜롬비아(Colombia)라는 이름은 아메리카 대륙의 항로를 처음으로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탈리아어: Cristoforo Colombo, 에스파냐어: Cristóbal Colón, 영어: Christopher Columbus, 라틴어: Christophorus Columbus)의 이름을 따서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가 지은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들을 일컫는 말로 쓰이던 이 명칭은 나중에 1819년 시몬 볼리바르에 의해 건국된 옛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 영토(현재의 콜롬비아, 파나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에 건국한 그란 콜롬비아에서 채택되었다.

 

1830년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가 떨어져 나가고 쿤디나마르카 지역만 남으면서 새 나라를 신 그라나다로 지었다. 1858년 신 그라나다가 공식 국호를 그라나다 연합으로 개칭했다가 1863년 콜롬비아 합중국으로 바꿨고, 그 뒤 1886년 콜롬비아 공화국으로 바꿔서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3. 콜롬비아의 역사

기원전 약 1만년전,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는 부족이 오늘날의 보고타 부근(엘 아브라(El Abra)와 테켄 다마(Tequendama) 지역)에 존재하였다. 이들은 막달레나(Magdalena) 강 계곡에서 살면서 서로 문화 교류를 하였다. 기원전 1천년경, 아메리카 토착민 무리들은 카치케(cacique)라 불리는 우두머리의 지도로 피라미드 구조의 정치 체계인 카치 카즈고(cacicazgo)를 발달시켰다. 콜롬비아에서 가장 복잡한 카치 카즈고 체계를 가진 2개의 문명은 카리브해 연안 지역의 타이로나(Tayrona)와 보고타 부근의 고원 지역의 무이스카(Muisca)이었다. 두 문명은 모두 치브카(Chibcha) 어족에 속한다. 무이스카 사람들은 잉카 문명에 이어서 남 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발달된 정치 체계를 가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외에도 킴바야 같은 토착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로드리고 데 바스티다스(Rodrigo de Bastidas)가 이끄는 스페인 탐험가들이 1499년 카리브해 연안을 처음으로 탐험하였다. 크리스토포로 콜롬보는 1502년에 카리브해 지역을 항해하였다. 1508, 바스코 누녜즈 데 발보아(Vasco Nuñez de Balboa)는 우라바 지역을 통해 이 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하였다. 1513년 그는 태평양(그는 이것을 남쪽의 바다(Mar del Sur)라 명명하였다.)을 처음 발견한 유럽 사람이었다.. 이 발견으로 스페인 사람들이 페루와 칠레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지역의 인구 구성원들은 칩찬(Chibchan)과 카리브(Carib)의 수백 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현재는 캐리비안 사람들로 알려진 부족들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들을 전쟁과 동맹을 통하여 정복하였다. 이 와중에, 천연두 같은 질병도 함께 들어왔다. 정복과 인종 청소는 원주민들의 인구 감소를 가져왔다. 16세기에,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로부터 노예들을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이후,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오늘날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를 포괄한다)이 들어섰고, 보고타를 수도로 두었다. 정복과 식민화의 시작 이후, 스페인의 지배에 대항하는 여러 번의 무장봉기가 있었으나, 그 대부분은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너무 힘이 미약하였다. 스페인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추구한 마지막 운동이 1810년 무렵에 일어났다. 이것은 1804년 생도맹그(오늘날의 아이티)의 독립에 따른 것으로서, 이것은 시몬 볼리바르나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산탄데르(Francisco de Paula Santander) 같은 마지막의 반군 지도자에게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지원을 한 것이었다. 베네수엘라인인 시몬 볼리바르는 콜롬비아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산탄데르는 콜롬비아의 부통령이 되었고, 이어서 시몬 볼리바르가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두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반군 운동은 1819년에 마침내 성공하였고,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은 에콰도르, 콜롬비아(당시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한 부분이었다.), 베네수엘라를 회원국으로 하는 그란 콜롬비아 연방을 형성하였다. 1830년 그란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가 탈퇴하면서 와해되고, 오늘날 콜롬비아와 파나마에 해당하는 지역에 누에바 그라나다 공화국이 출범했다. 이 새 국가는 그라나다 연합(1858)이나 이후 콜롬비아 합중국(1863)과 같은 연방주의 체제를 실험했으나 결국 1886년 콜롬비아 공화국이 선포되었고, 1903년 파나마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지원한 미국 정부에 의해서 파나마가 분리되었다.

 

4. 콜롬비아

콜롬비아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같은 남미지역에서 축구에 대한 사랑이 그 어느 국가보다 강하다. 지금 생각나는 건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기록한 선수가 본국으로 돌아간 후 살해를 당하는 경우까지 있었을 정도다. 
흥이 많은 나라이지만 그만큼 다혈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많이 기분이 좋을 때 많이 했던 '아싸리비아 콜롬비아' 라는 말이 생각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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